일단 총평을 하자면, 그동안 여타 언론이 띄워주려고 노력한 스타건축가들 때문에 대중들에게는 잘 알려져있지 않았던 가치있는 한 건축가가 이렇게라도 알려지게 된 것이 좋은 일일 것이고, 영화감독에 의해 이렇게 뒤늦게나마 무주 안성면 면사무소(1998)와 무주 공설운동장(1999)이 재발견된 일은 무척 아쉽지만 기쁜 일이라 하겠다.
앞서 언급한 두 건물에 대한 이야기는 EBS 지식채널에서 한번 다루어서 아래 링크로 걸어두니 관심있는 분들은 다들 보시라. 사실 그 영화에서 건축하는 사람으로서 느낀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는 지식채널에서 거의 다 다룬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할 이야기를 하나 해야겠다.
먼저 영화 '말하는 건축가'가 이렇게 약소하게나마 어느정도 팔릴 수 있는 소재가 될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오히려 한국에서 대중이 '건축가'라는 직업이 어떠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지에 대한 판타지를 잘 보여준다고 본다. 그래서 오히려 진짜 필요한 부분데 대해서는 (말하는 건축가가)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무주 공설운동장 에피소드에서 정기용 선생이 직접 하는 말로도 확인이 되는데, '30개의 프로젝트'를 '설계비도 (거의) 받지않고' 완성한 것이 이렇게-그 동안 수시로 문제가 되어왔던 많은 건설비가 들어가는 호화건물에 대비해서도- 사람(과 자연)을 중심에 생각한 훌륭한 결과물이 탄생한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감동을 느끼는데 대해 나는, 사람들이 한때 문화계의-그리고 흔치않게도 한국건축계의-화두로 떠올랐던 승효상 선생의 '빈자의 미학'에서 갈구했던 욕망을 다시 한번 다른 형태로 발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
이른바 한국에서 농담삼아 많이 이야기하는 건축과 친구에게 하는 이야기: "나중에 건축가 되면 우리집 싸게 좀 지어줘."의 환상을 구현하는(영화 내의 버드나무집 프로젝트까지 보자면) 거의 완벽한 버전이 바로 정기용 선생이 아닌가 말이다.
게다가 정기용 선생의 저 말-30개 프로젝트를 설계비도 거의 받지않고-은 사실이기까지하다. 정기용 선생의 의도와 선의를 모르는 바가 아니고, 그렇게라도 저런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훌륭한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 건축계의 입장에서 보았을때는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더 크다. 차세대에 이 직군에서 일하게 될 사람들에게 사업적으로 매우 나쁜 선례를 남겨두었기 때문이고, 그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또한 나쁜 관행과 어두운 미래를 주었기 때문이다.
영화 중간에 건축비평가 이종건 선생이 말한 '(3세대) 건축가들이 건축을 페티시즘적으로 바라본다'는 말은 생각해보면 정말로 뼈아픈 지적인데, 아마 그것은 페티시즘적으로 바라보는 지점과 이유가 달라서 그렇지 한국인의 거의 대부분이 그렇게 바라보고 있는게 아닌가 싶다. 특히 한국같이 건설업이 전체 경제부분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율이 큰 곳에서는 말이다. 문제는 젊은 건축가들이라고 해서 별로 그 페티시즘적 시각에서 자유로운 것 같지도 않고. 오히려 더 퇴보한 것일 수도 있는게, 그 전에는 그나마 '지어진 건물이 세상을 바꾼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요즘은 '끝내주는 디자인이 세상을 바꾼다'라고 더 허공으로 날아가버렸다는 것이다. 젊은 건축가들은 더 주의하고 반성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 P.S: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젊은 건축가들에게 질문하고 답을 받은 미공개컷이 있다는데, 그건 정말 공개안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접어두었으니 궁금하면 보시고.
미공개컷 열기
이것에 대한 이야기는 내가 트위터에 짧게 한번 언급을 했었는데(링크1, 링크2) 이제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일반론적인 질문은 건축가에게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다. 굳이 물어보고 싶으면 'OOO의 건축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해라. 건축도 분야가 엄청나게 많고, 사람들마다 전문분야도 다르며, 그 분야마다 시각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트위터에서 말했던대로, 한국에서는 여러가지 이유로 건축가라는 직업에 대한 왜곡된 환상이 있는것 같은데 그걸 걷어내야하는 것은 우리세대의 일이겠지만, 저 인터뷰 영상을 보고있으면 한숨밖에 안나온다.
* P.S 2: 오랫만에 쓰니 글이 횡설수설이다. 시간 많으니 다시 글 종종 써야지.
Posted by er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