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건축'의 세 가지 층위

이쪽 업계사람들이 어떤 건축이 잘 되었다고 생각할 때 쓰는 세 가지 종류의 표현이 있다.

"잘 그렸네" / "잘 풀었네" / "잘 지었네"

잠깐만 읽어봐도 알겠지만, 이 세 가지는 그 말이 가리키는 '잘 되었다'는 부분이 다르다.
그리고 내 생각을 조금 덧붙이자면, 저 세 가지가 가리키는 건축의 '급수'도 차이가 난다.

먼저 가장 그 급이 낮은 것이 "잘 그렸네"이다.
 "잘 그렸네"라는 것은 글자 그대로 보기에 좋은 그림을 그렸다는 말이다. 그리는 사람의 감각적인 수준에 따라 쉽게 차이가 날 수 있는 이 부분이 왜 가장 급이 낮은가 하면, '디자인'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디자인'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수준을 보면, 사실 "잘 그렸네"의 수준이 가장 훌륭하다는 말을 들을 수준이다. 그림으로 보기에 가장 예쁠 수 있는 것이 이 "잘 그렸네"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물론 잘 그리기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디자인 과정의 전체를 놓고 생각하자면 잘 그렸다는 것은 그저 가장 기초적인 작업을 좀 잘 한 것일 뿐이다. 그 그림이 실물로서 어느정도가 될 지 그림은 그 어떤 것도 보증해주지 않고, 또 어떤 생각의 과정으로 이것이 나왔는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순히 보이기에 더 예뻐보이는 것이 더 나은 디자인이라는 법도 없다.

 그것보다 조금 나은 것이 "잘 풀었네" 인데, 이것은 단순히 그림의 수준에서 벗어나 실물이 되기 직전의 도면수준에서 이 건물의 맥락이 가지고 있을 여러가지 문제들을 잘 해결했으며, 첫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했던 여러 개념들이 잘 녹아들어가 있다는 뜻이다. 이것을 이루어내려면 당연히 그림을 그릴 때 보다 고려해야될 사항들이 엄청나게 많아지고, 조율해야 할 것도 많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잘 풀어낸 디자인은 잘 그린 건축보다 훨씬 수준 높은 것이 되며, 그 '풀어냄'을 읽어낼 수 있다면 그 그림을 그려낸 사람의 생각의 과정 또한 어느정도 읽어낼 수 있다.

 그리고 가장 힘든 것이 "잘 지었네" 이다. 잘 짓는 것은 실상 내 마음대로 안 되는 일이다. 그리는 사람에게 '짓는다'는 것은 관여해야할 일이지만, 내 손을 떠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잘 풀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전체 사회의 기초적 수준이 필요하지만, 잘 짓기 위해서는 그것보다 더 높은 수준이 필요하다. 어떤 실물에 대해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그것을 실물로 실현시키는 사람들의 기본 자세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많은 경우 건축을 단순한 재산가치로 생각하기 때문에 지금 현재와 같은 건물들이 많이 지어질 수 있는 것이다. 잘 짓는 것은 그만큼 쉽지않은 일이다.

 정말 훌륭한 건축이 되려면, 저 세가지를 다 만족해야 한다. 셋 중 하나만 잘해서는 좋은 건축이 결코 나타날 수 없다. 그리고 저 세가지는 내가 보기에 일반적으로 엇비슷하게 수준이 올라간다. 하지만 우리나라 수많은 잡지들에서 건축을 다루는 수준은,(건축 전문잡지에서도) '잘 그렸네' 수준을 넘어가는 것을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애초에 제대로 하는 사람도 많지 않거니와, 그것을 제대로 읽어낼 사람도 별로 없는 것이다. 그러니 수준 올라가기가 쉽지 않고, 또 앞으로도 그리 쉬워보이지 않는다. 이 판을 지속적으로 뒤흔들어줄 방법이 무엇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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